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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김민종 나이 키 몸무게 사는곳 근황 손지창 과거 학력 음반 여자친구 결혼 이혼 재산 등
    1 2021. 5.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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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종 프로필 

    출생

    1971년 2월 23일 (49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적

     대한민국

    본관

    경주 김씨

    신체

    180cm, O형


    직업

    가수, 배우, SM 엔터테인먼트 이사

    가족

    2남 2녀 중 넷째

    학력

    서울대왕초등학교 (졸업)
    수유중학교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 / 전문학사)

    종교

    불교(법명: 법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데뷔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김민종은 대한민국의 가수 겸 배우이다.

    가수와 배우 양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 원조 멀티 엔터테이너로, 대표적인 90년대 아이콘 중의 한 명이자 미남 톱스타였다. 안양예고-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김민종은 정식 데뷔 전에는 광고모델로 업계에 얼굴도장을 찍다가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데뷔했고,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가수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드라마만 나왔다 하면 히트를 쳐서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렸다. 

     

    <느낌>, <머나먼 나라>, <미스터Q>, <수호천사> 등의 숱한 드라마에서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드라마를 대히트시키고 OST까지 직접 불러 대히트시켰다.

     

    특히 김희선과는 <머나먼 나라>, <웨딩드레스>, <미스터Q> 세 작품에서 주연으로 만나 커플로서 찰떡궁합 콤비를 과시하여 90년대 드라마 남녀 캐스팅 1순위였다.[6]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는 당시에도 흔치 않은 마스크였고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여러 하이틴 스타들 군단의 일원으로 톱가수로서의 인기까지 더해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톱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결혼한 배우 이승연과 6년 넘게 공개 열애를 하며 1990년대 대표적인 톱스타 커플이었으나 2001년에 결별했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쪽으로는 영 풀리지 않았는데, 데뷔 초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나름 성공을 하고 인지도를 쌓아가다 인기 스타가 된 이후 찍은 영화 <귀천도>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찍은 영화는 줄줄이 망하게 된다. 그 뒤엔 충무로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지 영화계에서는 제작자, 감독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나비>같은 경우는 본인도 매우 진지하게 작품에 임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갱스 오브 뉴욕, 무간도, 선생 김봉두, 매트릭스 리로디드, 엑스맨2,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살인의 추억이었다. 운이 정말없었다.


    또 힐링캠프 김민종 편에서 김민종이 직접 밝혔듯이 영화 <낭만자객> 이 자신의 연기 커리어의 향후 향방를 결정하는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와 음반에서는 항상 히트를 시키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나 영화에서 항상 실패를 해온 김민종은 당시 하이틴스타의 틀을 벗어나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이 절실했다.

     

    특히 영화배우가 몸값과 위상에서 드라마 배우를 추월해가던 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 만약 낭만자객이 흥행을 하면 하이틴스타가 아닌 제대로 된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실패를 한다면 과거의 하이틴스타로서만 남고 배우로서는 클래스가 추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낭만자객은 전국 관객 90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영화 자체가 혹평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터프가이 이미지에 눈에 힘주고 멋있는 캐릭터만 연기하던 김민종 또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이미지를 구기고 2000년대 현빈, 소지섭, 강동원 등의 새로운 배우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그 후 김민종의 연기 커리어는 쭉 하락세를 걸었다.


    2003년 KBS 주말 드라마 <진주목걸이>, 2004년 SBS 수목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 2005년 MBC 수목 드라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에서 주연을 맡아 드라마 커리어는 이어갔지만 90년대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란 말이 무색하게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2006년 tvN 개국기념 미니시리즈 <하이애나> 를 끝으로 원톱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2008년 MBC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2011년 SBS 드라마 <아테나> 등을 거치며 주연의 자리에서 확실히 내려오게 되었고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슬럼프를 겪었다.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복귀. 팬들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완벽한 연기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덕분에 미중년 컨셉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드라마에서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자신이 '신사의 품격'에서 맡은 최윤 변호사 역을 그대로 활용하여 차관우를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웃하려 제의를 하는 선배 변호사로 등장. 

    또한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동일'과 인연을 맺은 자신의 캐릭터 '김민종'으로 분하여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삼천포와 같이 축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다.

    2015년에는 SBS 드라마 미세스 캅을 2016년에는 시리즈편인 미세스 캅 2에서 박종호 역할로 출연한다. 2017년, MBC 월화특별기획 투깝스에 조항준 역으로 특별출연. 또한 12월에 개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에도 우정 출연하여 과거 인기 스타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에는 SBS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윤한기 역할로 출연하지만,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이어 두번째 악역을 맡았다.

     

     

     

    그리고 김민종은 가수 활동도 했었는데 1992년 솔로 1집 또다른만남을 위해 로 데뷔하여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신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바로 10위 안에 들며 가수로서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1993년 솔로 2집 하늘아래서가 1위를 하고 크게 히트하여 락발라드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또한 솔로 1집 활동이 끝나가던 시기인 1992년 12월에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하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그룹 더 블루를 결성해서 투유초콜릿 CF송이자 더블루 1집 타이틀 너만을 느끼며 (1992), 손지창과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느낌의 OST 그대와 함께 (1994), 더블루 2집 후속 친구를 위해 (1995)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듀엣 그룹으로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솔로 1, 2집과 더블루 1,2집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후 1996년에는 본인이 주연을 맡고 배우 이경영(196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귀천도의 OST 겸 솔로 3집 타이틀이었던 귀천도애가 그 전 앨범들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싹쓸이할 때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를 표절한 걸로 판정되어 가요톱텐에서 사과 방송을 한 다음 1위 후보에서 자진 하차하고 가수 은퇴 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머나먼 나라> 의 OST 이자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후속곡 Endless Love 활동 역시 불미스럽게 접게 되었다.


    그렇게 약 2년간 가수로서는 활동을 하지 않다가 착한 사랑 작곡가 김도형과 가수 신승훈, 가수 이소라 등 주위의 설득에 김민종의 대표곡으로 아직도 사랑받는 록발라드 명곡 착한 사랑의 작사를 직접하면서 2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한다. 착한사랑은 1998년에 가요프로그램 1위를 수차례 기록하며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김민종은 과거 인기 가수의 영광을 되찾는다. 그 뒤 발매하는 앨범마다 큰 인기를 끌고 가요프로그램 1위를 쓸어담으며 2000년대 초중반까지 90년대 대표 남자 인기 가수이자 록발라드의 대표 주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집 또다른 만남을 위해  투유, 2집 하늘 아래서, 3집 귀천도애 Endless Love, 4집 착한 사랑  그래도 그대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야 세상끝에서의 시작, 5집 비원  순수, 6집 왜  아름다운 아픔, 7집 You're My Life 하얀 그리움, 8집 바보처럼 등의 여러 히트곡들을 남겼다.

     

    특유의 목을 쥐어짜는 창법과 열창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는 표정, 무대에서 쓰러질 듯한 모습은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기로 따라했고 1970~1980년대생들이 노래방에서 김민종의 포즈를 많이 따라하며 노래를 불렀었다.

     

     


    2005년 영화 종려나무숲의 OST '좋은 사람 만나요', 2008년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의 OST '이별도 사랑이다' 등의 OST를 발매하였으나 정규앨범은 2003년 솔로 8집 이후로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최근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 이유는 음악을 잘해낼 자신이 없고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가요계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에는 신사의 품격의 OST 를 발매하였는데 본인의 6집 후속곡이던 아름다운 아픔을 재녹음해서 수록하였고 이 노래가 최근 참여한 음악 활동이 되겠다.

    수많은 1위를 하고 숱한 히트곡을 남긴 레전드 남자 솔로 중의 한명이지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는 가수 김민종의 모습이 생소한데[28], 2003년 솔로 8집 바보처럼 활동 이후로는 배우에만 전념하여 가수로서의 모습을 TV나 공연 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에게는 학창시절 최고의 인기 가수 중 한명이었고 특히 노래방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가던 1990년대 중후반에 김민종의 히트곡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자들의 대표 애창곡들이었다. 특히 남심을 자극하는 음색과 본인이 직접 작사한 슬픈 가삿말들로 인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록발라드 가수치고는 노래의 난이도가 높거나 고음이 많은 편은 아니였고, 가창력 역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본인의 음역대에 맞는 곡들을 김민종 특유의 간지와 애절한 감성으로 본인의 노래들을 잘 소화해내었다. 악을 쓰면서 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전업 가수가 아니란 비판도 당대에 있었으나 톱배우로서의 인기를 떠나서 가수로서 뛰어난 감정전달능력을 보여주어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할 수 있었다.

    그러나 3집 귀천도애부터 목을 긁는 스크래치 창법[33] 으로 창법을 바꾸어서 음역대가 많이 가라앉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잦은 술담배로 인한 관리 실패로 본인의 히트곡들을 원키로 소화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목 상태가 악화되었다. 모창 프로그램 히든싱어 시즌 1때부터 섭외 1순위였던 가수 김민종이 지금까지도 출연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계속 언급하듯이 김민종 본인이 목 관리에 실패하여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2019년 현재 사실상 가수로서는 커리어를 중단한 상태라고 볼수있는데 다만 인터뷰나 방송에 나오면 여전히 음악적 갈증은 마음 속에 있다고 하고 라디오스타나 복면가왕 게스트로 나와서 가끔씩 본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앨범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히든 싱어4 보아편에 패널로 나왔을 때는 자기는 1라운드에서 떨어질거라며 히든 싱어 출연을 고사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는 김민종의 모창자를 꾸준히 모으고 있지만 시즌6이 될 동안 출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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